Geoff Yoon
엡실론델타 대표 / 기술을 product에 녹여 현실세계의 문제와 연결하는 problem solver

[시시콜콜 리포트] 고스트 프로토콜 Day 1~3: 혼자 분좋카 가는 남자의 민망함

[시시콜콜 리포트] 고스트 프로토콜 Day 1~3: 혼자 분좋카 가는 남자의 민망함

“몇 명이세요?”

“…한 명이요.”

익선동 카페에서 받은 질문. 그리고 내 대답을 들은 직원의 미묘한 표정.

맞다. 여기는 20대 여성들이 프로필 사진 찍으러 오는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라는 뜻, 벌다줄)다. 남자가, 혼자, 주말 오후에 온다는 게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하지만 나는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의 고스트 프로토콜이 시작되었으니까.


11월 1일, 토요일: 먼저 나섰다

엡실론델타의 고스트 프로토콜.

우선 대표인 내가 먼저 주말을 이용해서 이틀간 실험용 고스트 프로토콜을 실행해보았다.

팀원들에게 “이렇게 하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봐야 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발견하라.

11월 1일 토요일, 첫 행선지는 익선동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토스를 만든 이승건 대표의 책 『유난한 도전』을 읽었다.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싸이월드 기획자가 3000만 명이 사용한 미니룸 아이디어를 인사동 카페에 앉아 구상했다고.

이승건 대표는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인사동을 종종 찾아가 사람들을 관찰하고 문제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 나도 인사동에 가자.’

그렇게 생각하다가, 잠깐.

요즘은 익선동이 더 힙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 트렌디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좀 더 트랜디한 사람들은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첫날은 익선동.

솔직히 첫날은 막막했다.

“뭘 보지? 뭘 들어야 하지?”

노트북을 펴고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어색했다. 이게 맞나 싶었다.


Day 1~3의 기록: 내가,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것들

11월 2일 일요일, 나는 용리단길로 향했다.

하루가 지나니 조금은 요령이 생겼다.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어떤 시간대가 좋은지.

그리고 11월 3일 월요일.

이제 팀원들도 합류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나는 성수로, 쥬니니(우리 SW개발리더)는 서현역으로, 베니(우리 SW개발자)는 사당역으로.

3일간의 기록을 정리하면: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성수역 무신사 본사 앞 실패, 서현역 실패, 모란시장 실패, 코엑스에서 미아 발생…

그래도 몇 가지는 건졌다.

🏙️ 장소 선정의 함정

11월 3일, 월요일. 나는 성수로 향했다.

사람 많을 줄 알았다. 스타트업 성지잖아. 트렌디한 사람들 많을 것 같았다.

처음 간 곳: 오피스 지역. 결과는 실패. 다들 사무실 안에만 있더라.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카페도 한산했다.

그래서 바로 자리를 옮겼다. 성수 안에서도 좀 더 상업 지역 쪽으로.

여기는 달랐다.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같은 성수인데도 몇 블록 차이로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교훈: 안 되면 바로 pivot하라. 한 곳에 집착하지 말 것.

같은 날, 쥬니니(우리 SW개발리더)는 서현역으로 향했다.

서현역은 ‘분당의 명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붐빌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 사람이 너무 없었다.

‘아, 이건 아니다.’

쥬니니는 또 이동했다. 모란시장.

여기는 다를 거라고 믿었다. 전통시장이잖아. 어르신들 엄청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 여기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쥬니니의 2연타 실패.

하지만 쥬니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 밤 팀 채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판교나 완전 오피스 밀집 지역에 가봐야겠다. 평일엔 그런 곳이 사람 많을 것 같은데.”

우리 모두 동의했다. 평일에는 오피스 지역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교훈: 사람 많은 곳 ≠ 관찰하기 좋은 곳

그리고: 우리의 예상은 믿을 게 못 된다

타이밍과 장소의 조합이 중요하다. 내가 갔던 주말 오후 익선동과 쥬니니가 갔던 서현역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 엿듣기(?)의 기술

카페에서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생각보다 어렵다.

  • 카페 음악이 생각보다 크다
  • 여러 방향에서 소리가 들린다
  • 사람들이 생각보다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래서 3일차쯤 되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 테이블 간격이 좁은 카페를 찾는다
  • 구석자리보다 중앙 자리 (여러 테이블 소리 들림)
  • 혼잡한 시간대를 피한다 (너무 시끄러움)

하지만 여전히 방법론은 삽질 중이다.

🗺️ 삼성역 코엑스의 배신

같은 날, 베니는 사당역을 거쳐 삼성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코엑스 지하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것도 30분 넘게. 조금만 더 길었으면 우리 팀원 찾는다는 재난문자 띄울 뻔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웃긴 건 옆에 같이 길 잃어버린 외국인들이 있었다는 것.

“Excuse me, where is xxx?”

“…I don’t know. I’m also lost.”

코엑스 지하는 던전이다. 베니도 외국인 관광객도 모두 평등하게 길을 잃는 공간.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서 발견한 인사이트도 있었다. 실내 길찾기에 대한 문제의식.)

👥 민망함을 견디는 법

익선동 분좋카에서의 그 순간.

“몇 명이세요?”

“…한 명이요.”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20대 여성들. 커플. 여자 친구들끼리.

그 사이에 노트북 펴고 앉아 있는 30대 남자 1명.

왠지 모를 시선을 느꼈다. 아니,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 안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쓰였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관찰 좀 하려고…”

라고 변명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러면 더 이상해진다.

그냥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교훈: 고스트 프로토콜은 민망함을 견디는 훈련이기도 하다.


3일간 수집한 인사이트들

📸 분좋카 현상

익선동에서 발견한 것:

  • 20대 여성 둘이 프로필 사진 고르는데 진지한 토론을 했다
  • 최소 10분 이상
  • “이건 각도가 이상해”, “이건 빛이 좋은데”

웨이팅이 있는 카페. 식당도 아니고 카페에 웨이팅이라니.

인스타에 올릴 “예쁜 사진"을 위해 줄을 선다.

이건 단순히 카페를 가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하러 가는 것이다.

📞 맛집 예약의 혼돈

어떤 커플이 식당에 전화하는 걸 들었다.

“예약 없이 갈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7시에 2명 예약이요.”

심플하다.

그런데 문제는:

  • 어떤 곳은 예약만 받고 현장 손님을 안 받고
  • 어떤 곳은 현장 예약만 받고
  • 어떤 곳은 캐치테이블에서만 받고
  • 어떤 곳은 전화로만 받는다

맛집마다 예약 시스템이 제각각이다.

이게 불편하긴 한데… 솔직히 식당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긴 하다. 그래도 기록.

🏋️ 취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들은 대화:

“요즘 뭐 재밌는 거 없어?”

“글쎄… 나도 모르겠어.”

“대학 때 밴드 했었잖아. 그거 다시 해보지 그래?”

“어… 같이 할 사람도 없고, 회사 일도 바빠서…”

삶에서 재미있을 만한 걸 못 찾는 사람들.

더 정확히는:

  • 취미를 갖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 같이 할 사람을 찾기 어렵고
  • 수준이나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러닝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는 제품 정보를 교환하더라. 커뮤니티가 있으면 이런 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 부동산 갈등

누군가의 전화 통화를 엿들었다.

“세입자 내보내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요.”

“공인중개사한테 전화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고…”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중개인.

법적 문제가 얽혀 있어서 누구도 쉽게 해결해주지 못한다.

👴 모란시장의 어르신들

모란시장에 가서 놀란 것:

사람이 생각보다 없었다는 것. (첫 번째 놀람)

하지만 그나마 있던 어르신들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것: (두 번째 놀람)

요즘 어르신들은 예전처럼 디지털 문명에 뒤떨어져 있지 않다.

  • 스마트폰 쓰고
  • 카카오톡 하고
  • 일부는 인스타그램도 한다

실패한 장소에서도 뭔가는 건졌다.

10년 후의 노년층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는 노년층. 그들을 위한 콘텐츠는?

🍔 쉐이크쉑의 비밀

평일 낮 쉐이크쉑에 의외로 40대 여성, 60-70대 남성이 많았다.

왜일까?

추정: 쉐이크쉑은 키오스크를 쓰지 않고 사람한테 주문할 수 있다.

키오스크가 직관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 혹은 키오스크를 쓰기 싫은 사람들.

그들에게 쉐이크쉑은 편안한 선택지다.

💊 건강기능식품 토론

서현역에서 40대 여성 두 명의 대화:

“지용성이라서 식후에 먹어야 해.”

“나는 수용성 거 먹는데, 빈속에도 괜찮더라.”

“쿠팡에서 샀어? 장은 좀 어때?”

40대 여성의 주요 관심사: 건강기능식품.

근데 문제는, 개인에게 맞는 건강기능식품을 어떻게 고르는가?

다들 본인 몸으로 실험하면서 찾는다.

💼 이력서의 진화

“요즘은 인턴을 하기 위한 인턴도 해야 한대.”

“이력서는 텍스트만 있으면 임팩트가 없잖아.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내면 어떨까?”

“AI로 포트폴리오 영상 만들어서…”

취업 준비생들의 고민.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왜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쓰기 어려울까.


3일의 결산: 내가, 그리고 우리가 배운 것

✅ 작동하는 것들

  1. 낯선 곳으로 가기
    익선동, 모란시장… 평소에 안 가던 곳에서 새로운 게 보인다.

  2. 타이밍
    주말 오후 익선동과 서현역의 차이. 언제 가는지가 중요하다.

  3. 빠른 포기와 이동
    성수 오피스 지역 안 되면 바로 상업 지역으로. 한 곳에 집착하지 말 것.

  4. 자리 선정
    3일차쯤 되니 카페에서 어디 앉아야 하는지 감이 왔다.

  5. 민망함 견디기
    혼자 분좋카 가도 죽지 않는다. 익숙해진다.

❌ 삽질들

  1. 쥬니니의 2연타 실패: 서현역 → 모란시장
    서현역도 한산, 모란시장도 한산. 우리의 예상은 믿을 게 못 된다.

  2. 너무 시끄러운 카페
    음악이 크면 아무것도 안 들린다.

  3. 코엑스 던전
    관찰하러 갔다가 길 잃고 30분 허비.

  4. 실패한 장소 선정 횟수: 3개
    성수 오피스 지역(→ pivot 성공), 서현역, 모란시장

🤔 아직 모르는 것들

  • 온라인 커뮤니티 관찰은 어떻게 해야 하나?
  • 효율이 너무 낮은 날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어떤 시간대가 가장 효율적인가?

답은 아직 모른다. 계속 삽질하면서 찾아갈 것이다.


그래서 뭘 발견했냐고?

3일간 내가, 그리고 우리가 모은 것:

  • 발견(인사이트): 12개
  • 문제: 10개
  • 탐구 주제: 5개
  • 아이디어 스케치: 1개
  • 실패한 장소 선정: 3개 (그중 1개는 pivot으로 회복)

목표는 한 달간 100개의 문제를 모으는 것.

지금 속도로는 한참 부족하다. 게다가 장소 선정은 거의 실패했다. (그래도 빠른 pivot으로 한 번은 회복했지만.)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이제 겨우 3일차다.

방법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 토스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 11월 목표

이제 우리 4명 모두가 움직인다.

  • 매일 다른 핫스팟으로 이동하며 관찰
  • 주말도 예외 없음
  • 오프라인에서 뭔가 소득이 없을 떄는 온라인 커뮤니티 관찰 병행 (당근, 소모임 앱 등)

🔍 시도해볼 것들

  • 출퇴근 지하철에서 사람들 폰 화면 관찰
  • 특정 고객군을 정하고 추적하기
  • 다양한 시간대 실험 (평일 낮, 주말 오후, 저녁 등)

🚫 하지 않을 것

직접 대화는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관찰자다.

인터뷰를 하는 순간, 우리의 편향이 질문에 녹아들 수 있다.

사람들은 관찰받는다는 걸 아는 순간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다.

💪 마음가짐

“인간극장 PD의 마음으로”

우리는 솔루션을 찾으러 나가는 게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러 나가는 것이다.


진짜 목표는 뭔가

100개의 문제를 모으는 것?

아니다.

100개의 문제를 가진 100개의 고객군을 이해하는 것.

그래야 2026년 1월부터 시작할 “1주 1아이템 스프린트"가 의미가 있다.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게 아니라,

필요한 걸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익선동 카페에서 웨이팅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동시에 옆자리에서는 20대 여성 둘이 프로필 사진을 고르느라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여기 있는 거다.

내가 겪지 않는 문제, 내가 모르는 불편함, 내가 속하지 않은 고객군.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또다시 “아무한테도 필요 없는 서비스"가 될 것이다.

4년간 그렇게 6번을 망했다.

이번엔 다르게 하고 싶다.


내일도 어딘가로 나갑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쌓여서, 언젠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을 알려줄 거라는 것.

고스트 프로토콜은 계속됩니다.

매일.

#엡실론델타 #시시콜콜비즈니스 #고스트프로토콜 #스타트업 #현장관찰 #문제발견 #분좋카 #민망함견디기


P.S. 혹시 고스트 프로토콜을 직접 해보신 분이 계시다면, 노하우를 공유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삽질 중입니다.

P.P.S. 이승건 대표님,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링크드인 DM 보내도 될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상한 놈으로 봐도 괜찮습니다.

(Upda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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